Stella's by norah

Things I love about Stella's:

- Yellow, dim lights
- unique art works on walls from local artists
- music, music, music..(this was the first place I listened to Air and zero7).
- drinks, from loose leaf tea to specialized coffees, effervescents.. yum!
- woody, not-so-fancy tables and chair
- baristas (some of them are cute)
- flowers

I even love logging into a cute local wifi network while using the Internet... it adds to my conceptualization of this cozy place.

My typical Stella-experience goes like this: it's afternoon, still bright outside, and I'm at this cute cafe with one or two friends like Erica, April, or Lena. Lights are dim so one can't tell if it's night or day. I'm trying to work on something with my laptop, but can't resist logging into facebook. I'm drinking either hot coffee drink (florentine or milky way) or some kind of carbonated drink (italian creme soda or calypso), and my company is pouring loose-leaf tea into her mug. Today's selected music: Air, or some other artists whose music is either very dreamy and psychedelic, making me feel like floating around in an empty space, or very acoustic.

꽃이 시든다는 것 by norah

이주일 전에 너무 예뻐서 꺾어와 물병 안에 꽂아두었던 보라색 이름 모를 꽃이 시들어 있길래
꽃을 버리는 도중 문득
생화가 싫다고 말하던 한 친구가 생각났다.
왜? 조화는 죽어있는 꽃이고 생화가 향기도 나고 더 좋잖아?
라는 나의 질문에
그 친구는 꽃이 시들어서 볼품없게 말라가는 모습이 너무 끔찍하고 가슴아프다고 했다.
그 때는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넘어갔었지만
이제 와서 뒤늦게 그 의미를 다시 곱씹어보고 있다.

꽃이 시들어가는 모습 조차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영원히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것 들 중에 아름다운 것들이 과연 무엇이 있을까?
얼마 전 호숫가를 아름답게 물들인 단풍을 보면서
나는 늙어가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생각에 잠겼었다.
이 단풍들이 곧 겨울이 되면 낙엽으로 지겠지만
여름 내내 푸르게 반짝이던 잎들을 빨갛게 물들이며 만들어내는 풍경은
시간의 흐름에 순응하는 자연스러움에서 묻어나오는 조용한 아름다움이 담겨있었다.

사람이 푸른 청춘을 보내고 나이 들어가는것
사랑의 열기가 조금씩 사그러지는 것
우리가 아쉬워하고 슬퍼하는 것들 이지만 어쩌면 이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모든 것에는 꽃이 피는 순간이 있고 그것이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순간이 있고
또 그것이 조금씩 저무는 시기가 있다.
그런 아름다운 순간들에서 조금씩 멀어져 갈때
그것들이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모래알 처럼 내 손안에서 사라져 갈때
시들어 가는 꽃과 지는 낙엽을 보고 슬퍼하는 것 처럼 애탄해야 하는걸까
아니면 그 과정 자체에서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의연함을 보여야 하는 걸까.

얼마나 더 인생을 살면 그런 의연한 자세를 갖을 수 있을까?



기억의 조각들 by norah

어떤 사람과의 짧은 만남에 대해 남을 몇가지 기억들.


검정 블레이저와 피코트의 뒷모습.

넥라인이 늘어진 두꺼운 니트.

맥주와  coke-float.

Blue bossa.

담배 냄새.

말로네 향수의 잔향.

워싱턴 스퀘어 공원.

해가 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마신 유난히 라떼가 부드러웠던 커피 .

웃을때 눈가에 지는 주름들.


손목에 뿌린 향수의 향이 옅어 질수록

때의 시간에서 멀어지고 기억의 조각들은 희미해진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가고 우리들은 각자  곳으로 떠내려 가겠지..



서울역 비둘기 by norah

1박 2일로 부산여행을 다녀왔다.

부산행 KTX를 타기 위해 서울역을 참으로 오랜만에 방문하게 되었다.
사람들도 정말 많았지만
각기 다른 행선지를 갖고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보다도
마치 이곳의 주인은 바로 나란듯 플랫폼들과 계단을 점거하고 있는
거대한 몸집의 비둘기들이 더 나의 눈길을 끌었다.
원래도 도시 비둘기(aka 닭둘기) 를 끔찍이도 싫어하지만
서울역 비둘기는 특히나, 뭐랄까..
두 날개를 가지고 언제든 이곳 저곳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는 새로서의 특권을 스스로 포기한 채
손쉽게 하루하루의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서울역이라는 곳에 스스로를 결박시켜 버린채
몸집만 거구하게 키워가는 그 우둔한 모습에 더욱 더 불쾌감을 느끼게 했다.

온 바닥에 사람들이 흘리거나 버린 음식 찌꺼기들이 흩어져 있으니
어찌 보면 비둘기들에게 서울역이라는 곳은 끼니 걱정 하나 없는 행복한 곳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흙 한줌 풀 한포기 없는 서울역이라는 건조한 구조물 내에서
뒤뚱뒤뚱 걸어다니는 (심지어 잘 날지도 않는다) 비둘기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동물원 철장속에서 이미 야생성일랑 모두 잃고 나른하게 식사를 기다리고 있는 야생동물들을 보는 기분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비둘기들은 그 곳을 벗어날 수 있는 날개를 가지고 있고 또 그들을 막는 철장도 없다는 것.
지금 당장이라도 이 풀내음 하나 나지 않는 플랫폼에서 벗어나 멋지고 넓은 (!) 세상을 누빌 수가 있는데
그런 날개를 스스로 묶어버린 것이나 다름 없지 않은가 싶었다.

과연 지금 나의 모습은 저 비둘기와 얼마나 닮아있는가 생각해보았다.
졸업 후 나는 집에서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으며
무기력하게, 하지만 이런 생활에 조금의 의구심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어딘가로 날아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지만
지금의 이런 편안한 생활을 굳이 벗어날 필요가 있을까 싶어
짧디 짧은 동선을 빙글빙글 돌며 살아가고 있다.
그럴수록 자꾸만 더 몸이 무거워지고
머리는 가벼워진다.
이 생활 밖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더 흥미진진한 삶이 어떤것인지도 자꾸만 까먹게 된다.
그렇게 내가 살고있는 세상이 마치 세상의 전부인 것 처럼
이 건조한 환경을 벗어날 생각 없이
서울역 비둘기처럼 허기를 채울 영양가 없는 무언가를 찾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것이다.

누군가 나를 붙잡아 밖으로 내던져주지 않는 이상
더 큰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날개짓은 내 몫이라는걸 새삼 느끼며
내 발치에서 바닥을 콕콕 쪼아대는 뚱뚱한 비둘기 한마리를 쫓아버리려고 발로 쿵! 하고 겁을 주었다.
비둘기는 후다닥 날아가더니
이내 플랫폼 벤치 옆 쓰레기통 부근에 다시 내려앉아 빈 과자봉지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내려놓기 by norah

내가 교회를 나가기 시작하며 신앙 생활을 하며 가장 받아드리기 힘들었던 것이 바로 이 '내려놓음'이라는 컨셉이었다.

나는 컨트롤에대한 욕구가 매우 강한 사람이다. 내 주변의 환경이고, 내 스스로이고, 모든것을 스스로가 통제 할 수 있기를 원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굳이 그것들을 통제해야만 한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이나 행동같은 것들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스스로 잘 알고있어야 하고, 그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알아야 하고, 또 이런 것들에게 내 스스로가 변화를 주기를 원한다.
내가 하는 행동들이 나의 순수한 의지로부터 발화된 것이기를 원하고, 나의 결정들이 다른 외압으로 인한 것들이 아닌 나의 자주적인 결정이기를 원한다.
그리고 이런 나의 믿음들--beliefs in self-efficacy, self-will, self-agnecy--이 정신적으로 건강한 것이라고 생각을 해왔다.

최근 나의 그런 믿음이 조금씩 무너지게 된 계기는
심리학을 접근하는 나의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심리학을 정말 좋아한다. 처음으로 이것이 바로 학문에 대한 순수한 흥미구나, 열정이구나, 라고 생각하게 된 과목이니까.
하지만 내가 디자인 한 리서치를 시작하게 된 이후로
리서치 결과에 목매는 내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다.
앞선 포스트에서도 밝힌바와 같이, 리서치 결과가 좋고 나쁨에 따라 나의 평소 기분, 학업적 의지 등등 모든것이 요동쳤기 때문이다.
이상했다. 심리학을 배우는 과정 자체를 즐기던 내가, 어느 순간 부터 statistical significance를 알려주는 숫자 몇개에 집착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나는 굉장한 스트레스, 불안함, 실망감과 무기력함을 얻게되었다. 리서치의 결과는 나의 컨트롤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고 나의 통제 밖에 있는것들이 통제하에 있는 것들 보다 월등히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삶에대한 컨트롤의 욕구가 큰 사람일수록 일상의 크고 작은 일들로 부터 더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가 있고 정신적으로 피곤한 삶을 살게 되기 쉬운 것 같다. 이런 컨트롤의 욕구는 완벽주의적 성향과도 상관관계가 있을 것 같다.

이제껏 belief in self-efficacy, self-will, self-agency는 정신적 건강의 징표라고 생각을 해 왔다. 하지만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되었다. 완벽주의적 성향--또는 그와 비슷한 다른 성향, self-efficacy에 대한 믿음, 그리고 다양한 anxiety disorder들과의 관계는 어떨까? Self-efficacy에 대한 믿음이 강한 사람일 수록 실패를 겪었을때 더 안좋은 신체적, 감정적, 행동적 반응을 보일까? 일시적으로 자존감이 떨어 질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더 실패에 vulnerable 하지 않을까? 아니면 이런 관계를 moderate하는 다른 성격 요소가 있지는 않을까?

예측할 수 없고 통제 할 수 없는 이 세상에서 어쩌면 '내려놓기'가 정말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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